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김학의 사건이 남길 교훈은?

道雨 2023. 2. 22. 09:21

김학의 사건이 남길 교훈은?

 

 

 

법관 인사를 앞두고 묵은 판결을 쏟아내는 것은 사법부의 오랜 관행이지만, 최근 2주 남짓 서울중앙지법은 그야말로 굵직한 판결을 쏟아내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을 무죄로 선고한 판결이 공분을 일으켰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과정에 김건희 여사의 계좌가 이용된 정황을 세세하게 기록한 판결이 있었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가해국으로서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판결은,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심야 출국을 막기 위해 긴급 출국금지에 나선 문재인 정부 법무·검찰 간부들의 직권남용 등 혐의를 대부분 무죄로 본 판결이 아닐까 싶다.

재판부는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됐던 이규원 검사 등이 무혐의로 종결된 김 전 차관 관련 옛 사건번호를 기재하고, 검사장 직인도 없이 긴급 출금을 신청해 출국을 막은 것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 긴급 출금이 절차상 위법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당시 진상조사단이 확보하고 있던 건설업자 윤중천씨 진술만으로는 긴급 출국금지를 할 수 있는 요건인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위법성 판단은 관련 법규를 장기간 검토한 뒤 파악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김 전 차관이 그대로 출국했다면 검찰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출금의 정당성과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김 전 차관에 대한 일반 출금도 충분히 가능했다며, 긴급 출금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만으로 직권을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범죄의 고의’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이런 경우까지 직권남용으로 처벌한다면, 사후적으로 위법·부당한 것으로 드러난 공무원의 직무행위는 모두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셈이다.

 

이 판결을 두고 상반된 반응이 나왔고, 앞으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가 충돌하는 딜레마를 에두르지 않고, ‘범죄의 의도’를 기준으로 형사처벌의 기준을 제시했다. 적법절차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법조계 일반의 기준에 견줘 이례적인 논리 구조여서, 향후 법리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사건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판결의 의미는 적지 않다. 언제부턴가 남용되고 있는 직권남용 혐의의 처벌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가 충돌할 때 공권력의 행사는 어때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많은 고민이 판결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판결과 함께 기억돼야 하는 것은 ‘김학의 전 차관 사건’ 그 자체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과 2014년 김 전 차관에 대한 두 차례 수사에서 계좌추적·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없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잇단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었다면, 5년 뒤 불법 출금이라는 무리수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강도 높은 재수사를 벌여 김 전 차관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정 증언을 앞둔 뇌물공여자를 검사실로 불러 사전 면담을 하는 바람에 ‘오염된 진술’ 논란을 일으키며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김 전 차관 무죄 판결의 처음과 끝에 검찰의 잘못된 관행이 있었던 셈이다.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18살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어네스토 미란다는 변호사 조력권 등을 고지받지 않은 절차적 위법 문제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파렴치범이었던 그의 무죄 판결은 뒷날 ‘미란다 원칙’을 정립했다.

 

김 전 차관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을 남길까.

김 전 차관 무죄 확정판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검찰은, 이번 이규원 검사 등에 대한 판결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노현웅 | 법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