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선언' 추켜세우다 불만 폭발한 〈조선일보〉, 왜?
사설에서 '한국 핵 족쇄 강화됐다' 발끈
'핵무장론' 펴다 거부당하자 배신감 느꼈나
공멸 불러올 핵무장론, 언론이 할 소리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미 관련 수많은 보도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설이 하나 있다. <조선일보> 4월 27일자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 제목의 사설이다.
<조선>은 이 사설 앞단락에서, 윤석열-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고 발표한 '워싱턴 선언'이 "그동안 실체를 알지 못했던 미국의 핵우산 계획을 공유하고, 유사시 핵우산이 즉각 작동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하지만 한국민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조치는 이번에도 없었다"며, 갑자기 비판적 목소리로 돌아섰다.
사설의 요지는 이렇다.
이번 워싱턴선언에서 양국 정상은 NCG(핵협의그룹) 창설과 함께 한국의 NPT 회원국 탈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포기를 문서화했으며,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단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워싱턴선언으로 한국 핵무장의 길이 봉쇄됐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친미친윤 매체' 조선일보, 윤 방미 열렬히 찬양하다 갑자기 비판
잘 알다시피 이 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가장 공이 큰 '친윤 매체'이면서, 미국을 사대(事大)하는 것으로 유명한 '친미 매체'이다.
윤 대통령 방미 직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의 '무릎' 망언을 '말실수,''논란거리'로 축소시키고, 오히려 '야당의 정쟁이 문제'라며, 망언 발언자 감싸기에 나섰다. 3박5일의 방미 기간 동안 수많은 찬양과 홍보 기사를 쏟아낸 '1등 친윤 언론'이다. 워싱턴 선언이 발표되자, 1면 톱과 종합면을 털어 의미를 설명하고 미화하는 기사를 냈고, 윤 대통령의 만찬 노래, 의회 영어연설 등을 기사와 사진으로 대대적으로 다뤄 방미 성과를 홍보한 매체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워싱턴선언에 이처럼 불만을 표시한 것을, 그저 웃고 넘길 일로 볼 것인가? 1면 톱과 맨 뒷면 사설이 전혀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극우적 발언과 가짜뉴스를 남발하던 이 신문이 마침내 자아분열에 빠진 것으로 보면 될 일인가?
아니다. 자칭 '1등 신문'이요, 실제로 발행부수 1등인 신문이 갖고 있는 '핵무장론'의 시각이, 우리 국민과 국가에 너무나도 위험천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언론도 <조선일보>처럼 워싱턴 선언이 갖는 '북핵 확산 억제'와 '한미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춰 홍보성 기사를 쏟아냈다. 이중 일부 매체는 '이번 선언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북한을 자극하고 중·러와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을 외교적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불만'은 이런 비판이나 외교적 고려의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핵 재배치·NPT탈퇴라는 무책임하고도 위험천만한 생각에서 터져나온 주장이라는 게 문제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주권국가가 국민을 지킬 수단에 대해 명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NPT 위반이 아니란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도 이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를 지키는 쪽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한국의 윤 정부와 미국에 워싱턴선언이 못박은 '한국 핵무장 불가' 방침을 비판하며, 사실상 이를 '재고해달라'고 요구하는 사설이다.
'핵무장론' 끈질기게 설파...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위험천만한 주장 말아야
<조선일보>는 그동안 지면을 통해 끈질기게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우리도 핵을 갖자"(2019.1.29. 김대중 칼럼), "미 지휘관까지 '주한미군 필요한가'..한 핵무장하면 필요없다"(2019.11.13.사설)를 비롯해 최근에도 "한국인 79%가 핵무장 찬성...여론조사에 깜짝 놀랐다"(2023.1.21.), "한국 핵무장 논의, 전적으로 적절..미국 전 인태안보 차관보"(2023.1.27.) 등의 기사에서 이같은 주장을 계속 설파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의 핵무장 주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가능하더라도 실익보다는 손해가 크며, 손익을 따지기 앞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안보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핵무장으로 NPT를 탈퇴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에 따른 엄청난 경제적 타격, 동아시아 연쇄적 핵무장으로 인한 안보위기 고조는 물론, <조선일보>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한미동맹이 파탄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인용한 '높은 핵무장 찬성' 여론조사 결과도 '실은 미국이 한국인에게 심어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란 해석이 붙어있다.
<조선>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한 때 핵무장에 반대하는 주장을 한 적도 있으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조선일보>가 현실성도, 실익도 없는데다, 우리 국민과 인류를 공멸위기로 몰고갈 핵무장을, 그것도 말을 바꿔가면서까지 끈질기게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북한 핵위협을 내세워 안보장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의 핵위협이 두려우면, 핵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온 국민의 생명과 미래를 공멸로 몰고갈 위험천만한 핵무장 주장은, 책임있는 언론, 정상적인 언론이 할 말은 아니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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