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과 아집으로 빼곡... 대통령이 부끄럽다
[주장] 시대착오적이어서 더 무서운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
어제(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여 경축사를 했다. 경축사라고 하기에는 듣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민망했다.
대통령은 70년 전 매카시즘 망령에 사로잡혀 퀴퀴한 공안의 향을 뿜어냈다. 상대를 인정하기보다 축출하는데 목적을 드러내는 저런 연설문을 누가 대통령에게 광복절 축사라며 건넸을까.
대통령 연설을 들으면서 적대적이기보다 시대착오적이라서 더 무서웠다. 연설문을 건넨 이는 분명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통령을 왕따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연설문을 건네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라 읽어버린 대통령을 정말 어찌해야 하나. 대통령 연설에 몇 가지 부분을 짚어 비판적 독해를 해보았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습니다. ...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일제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자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펼쳐졌던 독립운동에는 분명 대통령이 언급한 '자유'와 '인권', '법치'를 존중하는 정신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으로 단일하게 일치되지 않는다.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은 민족주의자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공산주의자들도 헌신적으로 투쟁하였고, 국가 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아나키스트들도 함께 했다. 민족해방운동은 세계의 여러 해방 사상과 조우하며 민족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로 분화하였다. 분화된 운동 내부에서도 다시 운동의 방식과 해방 이후 사회 형성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졌다. 다만 이들이 '독립운동'으로 합의한 부분은 제국주의 억압 그 자체에서 벗어나자는 '자유' 실현과 식민지민을 억압하는 제국의 법체계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북한 가난하다'는 대통령, 유치하다
70년 동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온 북한은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히 북한 체제의 문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동맹은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의 가담하에 끊임없이 북한 정권의 붕괴와 체제 전복을 위해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동원하고 있다. 북한은 자신을 둘러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미사일 개발 및 고도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뿐만 아니라 자주 '세계 보편의 가치'를 언급한다. 국제연합은 자국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 협력에 기반하여 인류의 인권 신장을 도모하는 일이 세계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이 현재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면 마땅히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남북 합의에 따른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대북 적대에 기대 북한의 경제적 상황을 비난하는 일은 '세계 보편 기준'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비겁하고 유치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확산된 여론의 비판을 대통령 스스로 오독하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다. 대통령은 입에 담기에도 민망하게도 "민주·인권·진보를 '위장'한 '운동가'들이 '패륜적 공작'을 일삼았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인권·진보 운동 세력의 한계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패륜'으로 설명되는 일은 가당치 않다.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와 소수자를 사회적 성원으로 인정해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시정하는 데 노력해 왔다.
더하여 대통령의 말대로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에 의해 여론은 쉽게 선동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여 조작선동 한다'는 대통령의 '조작선동'에도 깊은 위구심을 품으며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말 몇 마디로 공포를 조장하고자 하는 얄팍한 수에 '속거나', '굴복'할 국민이 아니다.
'자유', '평화', '번영'에 대해 국민과 대통령의 해석이 물과 기름처럼 겹칠 수 없는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말도 통하지 않는 '전 세계 많은 친구'와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어째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통령과는 자유도, 평화도, 번영도 함께할 수 없을 것만 같을까.
대결과 아집으로 빼곡한 연설문을 8·15 경축사라며 읽은 대통령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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