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 하라고 있는 자리인가

道雨 2024. 1. 12. 09:10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 하라고 있는 자리인가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유를 뭐라고 댈지 짐작해보면서 ‘총선용 악법’이니 ‘위헌적 요소’니 하는 말로 눙치겠거니 했다. 그런데 거부권 행사 이유에 ‘그 말’을 기어이 집어넣었다.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이 2년 넘게 무리하고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하고도 김건희 여사에 대하여는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하지 못한 사건.”(법무부)

 

 

이 말에는 특검법 내용의 문제점에 대한 주장을 넘어, 김 여사 주가조작 혐의 자체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들어가 있다. 사실상 ‘혐의가 없고 더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브리핑과 법무부 보도자료에 들어가 있으니, 이는 대통령의 판단이며, 거부권 행사의 공식 이유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연히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다. 수사 중인 특정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혐의 유무를 판단할 권한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다. 월권이다.

 

한마디도 지기 싫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법무부 장관 시절 김 여사 수사에 대해선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고 공정하게 처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윤석열 사단’인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도 국정감사 때 ‘김 여사 수사를 무혐의로 털 거냐’는 질의에 “지금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윤석열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못 한 채 쥐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이미 끝난 사건 취급을 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검찰 요직을 도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그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아예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결재 도장을 찍어버린 셈이다.

이로 인해 특검 필요성은 한층 커졌다.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검찰에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라는 수사지휘를 내린 셈이니, 앞으로 공정한 수사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정치적 주장 차원에서 자신의 배우자는 결백하다는 판단을 언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거부권이라는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공식 근거로 삼은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매우 위험한 헌법적 일탈이다. 이번 거부권 행사가 권력의 부당한 사유화임을 스스로 명백히 입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도 권력의 사유화로 비난받을 일이 있었다. 장모 최은순씨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20년 3월, 대검찰청은 최씨가 무혐의라는 논리를 담은 ‘총장 장모 의혹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

대검찰청이 이렇게 움직였으면, 그 과정에서 일선 수사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최씨의 은행 잔고 위조 혐의는 공소시효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는데, 검찰이 소환조사도 하지 않아 미온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검찰청이 누구의 개인 변호사도 아닌데 이런 문건을 만들면서까지 장모 의혹을 비호하는 것은, 공조직의 사적 사용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권력의 사유화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본디부터 공적 윤리감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단순 반복은 아니다. 이번엔 장모가 아닌 부인에 관한 사안이며, 윤 대통령 본인이 자신의 고유한 권한인 거부권을 직접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노골화한 형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그 자리의 무게가 검찰총장에 비할 바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 전체를 짊어지는 자리다. 한치의 사사로움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공적 책임이 엄중하다. 그 책임을 완수하도록 최고의 권한을 부여받는 자리다.

그런데 그 막강한 권한을 부인을 지키는 데 사사로이 사용했다. 그것도 월권까지 해가면서.

이로써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위신을 한없이 추락시켰다. 대통령직을 희화화했고, 그 자신도 우습게 만들었다.

 

대검찰청이 ‘장모 의혹 대응 문건’에서 ‘셀프 무혐의’ 판단을 내렸던 은행 잔고 위조 사건으로, 최은순씨는 유죄가 확정돼 징역을 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 판단하에 특검을 거부한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윤 대통령의 2년 전 발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졌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겁니다.”

 

 

 

박용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