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가 준 교훈 : '힘에 의한 평화'는 신기루였다
철통 같다던 아이언돔 신화 10·7 기습 이어 또 흔들
이란 드론·미사일 99% 격추는 미군 등의 도움 덕분
보복 걱정 없던 '전방위 군사 행동'의 신화도 무너져
"억제력, 통하지 않는 순간까지만 통한다" 귀담아야
'힘에 의한 평화'는 신기루였다.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외성(外城)으로, 아이언돔을 내성(內城)으로 철통같은 방어망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평화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작년 10·7 하마스 기습공격에 이어, 4·13 이란의 공격으로 거듭 확인된 현실이다.
'Mr. 안보(Security)'로 불려 온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에서 사상 초유의 '안보 실패'가 연거푸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영국·프랑스에 감사한 까닭
아이언돔의 신화는 이중으로 타격을 받았다. 10·7 하마스 기습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진 데다, 이번에도 철벽 방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란이 발사한 무인기나 미사일의 99%를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100% 자력으로 한 게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 해·공군이 요격작전에 합류한 덕분이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16일 "이란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도움을 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란이 명명한 작전명은 '진정한 약속 작전(Operation True Promise)'.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이 날려 보낸 비행체는 무인기 185기와 지대지 탄도미사일 11기, 순항미사일 36기 등이다.
이란이 지난 7일 오만을 통해 보복공격 계획을 미국에 통보한 것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공격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당장 중부군사령부에 탄도미사일 요격 기능을 갖춘 구축함 2척과 최신 전투기를 추가 배치할 수 있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미 지난주 추가 전력을 배치해 놓았다고 강조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몇 년, 특히 지난 몇 주 동안 이란의 직접 공격에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재보복 공격 뒤 이란이 아무런 예고 없이 공격한다면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성공적인 타격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일 것이다.
막대한 유지비용도 주목받았다.
람 아미나흐 이스라엘 예비역 준장이 14일 와이넷 인터뷰에서, 아이언돔을 비롯한 방공체계에 하룻밤에만 40억~50억 셰켈(1조 4694억 원)~1조 8369억 원)이 들어간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작년 국방예산 600억 셰켈을 다 투입해도 10여일 밖에 가동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국내 일각에서 부러워하는 아이언돔의 실체다.
무너진 '거인' vs '소인'의 대결 구도
이란이 이스라엘과 직접 교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깬 것은 또 다른 변화다. 이란은 그동안 이스라엘 안팎에 여러 시아파 무장그룹을 통해 대리전을 펼쳐 왔다. 이스라엘 점령지의 하마스·이슬라믹 지하드·이슬람혁명수비대(IIRGC),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헤즈볼라 및 다수의 시아파 무장그룹,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무장그룹 등이다.
이스라엘은 이들 조직을 '불의 반지(Ring of Fire)'로, 이란은 '저항의 축'으로 각각 불렀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것은, 이들 무장그룹을 총괄, 지원한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지휘관 모하마드 자헤디를 겨냥한 암살 폭격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이들과의 싸움을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와 시리아 등 외국 영토에 무단으로 병력을 투입해 왔다. 이스라엘군이라는 '거인'과 여러 개의 이란 지원 무장그룹이라는 '소인' 간의 비대칭 전쟁 구도가 깨진 건, 10·7 하마스의 기습공격이었다.
아이언돔은 무용지물이었다. 하마스는 수천 발의 로켓 공격과 동시에 3000명의 전사들을 동원해 이스라엘 군기지와 민간인 시설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병원과 학교, 주택 등에 대한 무차별 포격·폭격을 한 뒤, 10월 27일 지상군을 투입했다. 지금도 세계의 지탄 속에 진행되는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이다.
무너진 '일방적 전쟁'의 신화
이란의 '진정한 약속 작전'으로, 미국의 비호 아래 필요할 때마다 국경을 넘나들며 '국가 테러'를 벌여도 별다른 보복을 당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일방적 전쟁의 신화도 깨졌다.
이스라엘군의 4·1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 폭격은 가장 최근의 도발이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시아파 동맹인 시리아에 대한 공습과 이란 핵 과학자 암살 등의 '국가 테러'를 자행해 왔다. 이스라엘 공군기는 2017년 12월까지 6년 동안 최소 100번의 공습을, 2018년 9월에는 시리아 내 이란 군사시설 등에 200번의 공습을 각각 감행했다. 10·7 하마스 공격 뒤에는 아예 작전 지침을 바꿔 더 자주, 더 치명적인 공습을 퍼붓고 있다. (로이터통신)
요인 암살 공습은 '국가 테러'에 다름 아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 때마다 중동 곳곳에 포진한 미군의 가담을 우려해 최소한의 맞대응에 그쳤다. 2020년 1월 1일 미군이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을 폭사시키자,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미사일을 쏜 게 예외적이었다.
추락한 'Mr. 안보'의 지위
여섯 번째(2022~현재) 총리 자리에 앉은 네타냐후는 다른 어떤 이스라엘 지도자보다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Mr. 안보'라는 별명이 첫 임기(1996~1999)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닌 이유다. 본인도 자랑스러워했다. 팔레스타인 무장그룹이 도발할 때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휘둘렀다.
피는 피를 부른다. 군사력만으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소신'이 벽에 부딪히면서 별명이 무색해졌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즉각적인 군사작전을 일단 보류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영 칸 라디오방송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15일 집권 리쿠드당 소속 장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복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영리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리한 대응(smart response)'이 무엇일지는 분명치 않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날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네타냐후는 '영리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이 4·13 공격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란은 보복이 언제 올지 초조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으로 보면, 그 역시 이란의 공격을 초조하게 기다렸음을 드러낸 것이다.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힘에 의한 평화'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억제력의 최면
"억제력은 먹히지 않는 순간까지만 먹힌다(Deterrence works until the moment it doesn't)."
미국 한반도 전문가 로버트 칼린이 10·7 하마스 공격을 두고 한 말이다.
작년 가을 핵 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함께 방한했던 그는, 한·미 양국이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억제력의 최면'에 걸려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한다.
'Mr. 안보'의 거듭된 실패를 보면서 우리 역시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김진호 에디터gino77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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