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이명박 정부,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일 저질렀다”

道雨 2012. 4. 2. 12:44

 

     “이명박 정부,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일 저질렀다”

 

 

사찰대상자들 "범죄행위"

김옥영 전 방송작가협 이사장 "지원관실 연락해와"
김은희 PD수첩 작가 "옛날 악몽들이 떠오른다"
서경석 목사 "재개발 정책 반대해 사찰 당한 듯"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민간인들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사찰을 당한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검찰의 성역 없는 재수사를 촉구했다.

■ 2008년 '촛불' 이후 방송작가 주시

지원관실이 작성한 '2009년 첩보 입수 대장(자체)'에 이름이 올라 있는 김옥영 당시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은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해 3~4월께 지원관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소속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 대장에는 김 이사장이 재임 당시 '정치후원금 50만원을 3명의 국회의원에게 납부하는 등 불법후원금을 납부했다'는 첩보가 5월21일 접수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김 전 이사장은 "2008년 초 취임 뒤 여러 현안이 있어 국회의원과 관계부처 장관을 두루 만났고, 그 뒤 안면이 있던 여야 의원실에서 후원 요청 편지가 와 국회의원 2명에게 모두 합쳐 50만원을 후원했다"며 "그땐 단체 명의로 후원금을 내면 안 되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지원관실 직원이 그 건을 언급하며 문제가 있지 않으냐고 물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관실에서 민간단체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방송통신위원회가 등록 기관 몇 개를 꼽아 감사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며 "방통위 감사 내용이 왜 지원관실까지 올라갔는지, 왜 우리가 장부에 기재한 사실(국회의원 2명 후원)과 그 직원이 알고 있던 내용(3명 후원)에 차이가 있는지 의아했다"고 덧붙였다.

지원관실이 김 전 이사장을 사찰한 데는 방송작가협회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 처벌 등을 비판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08년 8월 지상파 3사 시사프로그램 집필작가 122명은 피디수첩 제재에 나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를 비판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방송작가협회는 2009년 3월 초 검찰이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협한다"는 비판 성명을, 그해 4월 말 검찰이 피디수첩 김은희 작가 등을 전격 체포하자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시위 이후 방송작가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방송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2009년 6월 방송작가들이 서울중앙지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하자 청와대 방송통신비서관실은 방송작가협회 쪽에 전화를 걸어 "작가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구두로 약속했던 예산지원 취소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관실은 피디수첩 역대 작가들도 주시했다. 2009년 11월 내사 진행 상황에는 '피디수첩 역대 작가 확인'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2000년부터 피디수첩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는 정재홍 작가는 "피디수첩 작가들은 자주 바뀌지 않는다"며 "미국산 쇠고기 방송 전후로 (정권에서) 방송작가들을 주목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9년 당시 피디수첩 작가들은 도청 등을 우려해 중요한 이야기는 전화로 하지 않는 등 외부 감시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다. 정 작가는 "공직자 윤리를 감시하겠다는 기구가 권력과 각을 세우고 비판해야 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 작가들을 주시하고 사찰한 것은 범죄행위"라며 "지원관실에서 무슨 일을 했고, 누가, 어디까지, 무슨 내용을, 왜 사찰했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디수첩 광우병 편을 제작했던 김은희 작가는 "사찰보고서 뉴스를 보니 잊고 있었던, (검찰 수사 및 기소와 관련된) 옛날 악몽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 보수-진보 인사 가리지 않고 사찰

지원관실은 또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인사라면 진보든 보수든 성향과 상관없이 사찰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서경석 목사도 사찰 대상이었다. 2010년 일반처리부(자체)에는 '서경석 목사 관련 시민단체 동향'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서 목사는 당시 정부 재개발 정책에 대한 반대 활동을 한 것이 사찰을 당한 이유라고 짐작했다. 그는 "2009~2010년 말까지 잘못된 재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 편에 서서 정부에 정책 변경을 촉구하기 위해 도로를 점거하는 등 격렬하게 싸웠다"며 "사찰 내용에 대해 조사가 이뤄진 뒤 내용이 정리되면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2월 사립전문대 관선 이사장에서 물러난 진보계 인사 사찰 흔적도 있다. '2009년 첩보 입수 대장(자체)'을 보면, 장임원 전 서일대 이사장의 재임 당시 채용 및 재단 자금 부당 지출 등과 관련된 비위 첩보가 기록돼 있다. 현재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인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과 남북교육협력추진위원장 등을 거쳤다. 장 이사장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시국선언과 2010년 천안함 국정감사·4대강 사업 전면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등에도 참여했다. 그는 "사찰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정부가 비밀리에 사실을 왜곡·조작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 같다"며 "내가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 쪽으로 진출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이 같은 사찰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박현정 정환봉 이충신 기자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