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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뒤흔든 선거, 정치 지형까지 바꿀까

道雨 2024. 3. 28. 09:36

조국이 뒤흔든 선거, 정치 지형까지 바꿀까

 

 

 

국민의힘 참패를 걱정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때만 해도 승리가 분명한 것처럼 보였는데, ‘민심 조석변(民心 朝夕變)’이란 말처럼 금세 상황이 바뀌었다.

그러나 예측이 잘못됐을 뿐, 사실 바뀐 것은 없다.

 

4·10총선을 꿰뚫는 핵심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 실패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는 대통령 발언이 상징하듯, 경제는 어렵고 물가는 뛰는데 이에 대처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집권세력에 표를 던지라는 건 억지에 가깝다.

 

선거의 기본 환경을 조성한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 판에 바람을 일으키며 역대급으로 다이내믹하게 만든 건 조국의 등장이다.

조국혁신당 출현에 대해선 수많은 비판과 지지, 반론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한 예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구속될 사람이 정당 대표인 게 정상적이냐는 공격은, 징계를 받고 검찰총장직을 중도에 그만둔 뒤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는데 무슨 문제냐는 반론에 설 자리를 잃는다.

 

 

정당 이름에 대표 이름과 같은 의미의 단어를 넣고,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치는 조국혁신당이 포퓰리즘 성향을 띠고 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기성 정당 구도를 깨고 등장한 유럽의 제3 정당들이 예외없이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았던 걸 떠올리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스페인에서 좌파 제3세력 정당으로 돌풍을 일으킨 포데모스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우리를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인 건 시사적이다.

 

 

조국혁신당은 ‘반윤석열’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는 건, 전통적 진보정당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

요즘 떠오른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라는 구호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2000년 한국 정치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처음 등장한 이래,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진보정당’이란 분할투표(split voting) 흐름은 민주개혁 세력 내부에서 꾸준히 있었다.

민노당이 2004년 17대 총선 비례투표에서 13%의 득표율을 올리며 10석(지역구 2석 포함)을 차지한 데엔 분할투표 움직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 진보정당은 매우 곤궁한 처지에 처해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류호정 전 의원이 페미니즘 공격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이준석 대표와 손잡더니, 후보등록 직전에 출마를 포기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건, 진보정당 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 빈 공간을 조국혁신당이 차지했다. 조국혁신당은 반윤석열의 강한 열망에 기반을 둘 뿐 아니라, 민주당보다 ‘좀 더 래디컬한’ 정치세력을 원했던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2004년 총선 직후 여론조사(4월16일 한겨레·미디어리서치)를 보면, 민주노동당 지지는 25~34살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이들이 20년 지난 지금 조국혁신당을 지지하는 걸 이상하게 볼 이유는 없다.

 

흔히 선거를 결정짓는 변수로 젊은 부동층의 향배를 말한다. 실제로는 4050세대 투표율의 영향이 더 크다. 민주당이 압승한 2020년 21대 총선 투표율을 분석한 중앙선관위 보고서를 보면, 4년 전에 비해 투표율 상승이 가장 가파른 연령대가 40대와 50대였다. 비례투표에서 40~50대가 조국혁신당으로 쏠리는 현상이, 왜 국민의힘엔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제3 정당은 중도를 지향하거나, 보수 정당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2016년 안철수의 국민의당(38석)이 전자라면,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31석)이나 1996년 김종필의 자민련(50석)은 후자에 속한다.

민주당보다 왼쪽에서 국회 원내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정당은 없다.

 

그런 정당이 생겨날 가능성이 엿보인다. 쉽지는 않다. 조국혁신당이 30% 가까운 정당 득표를 하더라도 13~14석을 얻는 데 그친다. 하지만 민주당과 비례연합정당을 결성했던 시민사회 및 다른 제3 정당들과 연대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민주당보다 왼쪽에 선 원내 교섭단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지형이 우리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예측하긴 어렵다.

민주 진영이 오랫동안 두 개의 원내 교섭단체를 가진 건 1988년 13대 국회(김대중의 평화민주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가 유일했다.

그때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도입하고, 부동산 투기를 막는 입법(개발이익환수법)을 하는 등, 국회 활동이 가장 활발했음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박찬수│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