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대통령의 범죄

道雨 2012. 7. 4. 11:28

 

                     대통령의 범죄

 

 

대통령은 애초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전 과정을 사실상 주도했다. 야당을 겨냥한 사찰과 공작은 물론 사후 은폐작업 역시 대통령의 재가 아래 치밀하게 이뤄졌다.

언론보도를 통해 사건이 불거지자 충성심 높은 참모들을 동원해 사건을 덮도록 지시하는 한편 공작에 직접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자들에게는 측근을 동원해 나중에 풀어주겠다고 구슬리기까지 했다. 이 모든 작업에는 대통령의 참모들이 물밑에서 깊숙이 그리고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사찰과 공작의 실행에는 물론 사후 입막음 과정에도 거액의 자금이 동원됐다. 일부 가담자는 대통령의 약점을 이용해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폭로 협박에 시달리던 참모들은 실제로 직접 돈을 모으러 나서기까지 했다.

언론은 잇따라 사건의 실체를 폭로하며 몸통을 직접 겨냥했다. 사건 발생 1년여가 지난 뒤 대통령의 연루 사실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증언이 터져나오고, 이어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대통령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대통령이 곧 몸통’이라는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참모들은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수사기관에도 참모를 통해 압력을 넣었다. ‘사건 속으로 더이상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구체적인 지침까지 줬다. 결국 의회가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대통령은 특별검사의 수사까지 받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민간인 사찰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받는 그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이아무개씨는 아니다. 정확히 40년 전 6월 미국에서 터진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이다.

비서실장에게 “중앙정보국 부국장을 시켜 연방수사국장 대리에게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대화가 그대로 녹음됐고, 은폐의 주범이 대통령임이 만천하에 들통날 때까지, 닉슨은 끝까지 버티다, 결국 탄핵으로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보면, 요즘의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어찌나 닮은꼴인지 섬뜩할 정도다.

야당 인사들을 미행·사찰하고, 브이아이피(VIP)가 이 모든 의혹의 중심에 있으며, 관련 물증이 드러나도 끝까지 버티고, 범인들과의 사이에 입막음용 돈거래가 있었던 것까지 닮았다.

두 대통령 모두 ‘소통’은커녕 ‘고집불통’이고, 도덕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불법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물이란 점에서도 비슷한 데가 있다.

곡절 끝에 의회가 조사에 나선 것까지 닮았지만 사건의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다. 주류언론이 나서서 대통령의 비리를 적극 파헤친 미국과 달리 우리 주류언론은 결정적 증언과 증거물이 나올 때까지 몸을 사렸다. 이번에도 역시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한 검찰은 더이상 얘기하지 말자.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법정에 대기중이던 범인이 법원 직원에게 “시아이에이”(CIA)라고 속삭이는 한마디를 단서로 2년 이상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의회는 37주간이나 청문회를 진행하며 닉슨의 보좌관으로부터 비밀 테이프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연방대법원은 8 대 0의 만장일치로 특별검사에게 녹음테이프 제출을 명령하는 등 언론, 국회, 검찰, 법원 모두가 제구실을 다했다.

아무리 최고권력자라 해도 명백한 불법조차 단죄하지 못하는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국회가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특위를 내일까지 구성하고,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의혹 특검법은 23일 처리하기로 했다.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은 과연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건강한지 함께 지켜보자.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