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쿠데타 : 국가를 강타하는 일

道雨 2021. 12. 29. 11:34

쿠데타 : 국가를 강타하는 일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 쿠데타에 의한 독재 정권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패할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그 권력의 원심력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왔을까. 그 영향은 세대로 이어지는 문제다. 쿠데타의 역사에 대해서는 비정할 정도로 냉철하고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탕탕탕! 타타타타!
그건 총소리였다. 할머니가 꽉 껴안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깼다. 꿈에서 덜 깬 어렴풋한 상태에서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혼란스러웠다. 안방에서 동생들과 자고 있던 어머니가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뭔가 질린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난리 났나 봐요, 어머니! 총성 아녜요?” “쉬잇, 애들 깨지 않게 하고 가만히 가 있거라!”
한국전쟁과 피난의 경험을 겪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두분에게 총성은 날벼락 같았으리라.
 
때는 1961년 5월16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변의 동네에 살고 있던 우리는 공포의 총성을 비몽사몽간에 들은 게 아니었다. 그건 당시 쿠데타 주동 세력이 한강 도하를 시도할 때 발발한 교전의 소리였다. 나는 9살, 초등학교 3학년 때 난생처음 진짜 총소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들었던 것이다.
 
쿠데타(coup d’État)! 그 자체로 충격적인 단어다. 말 자체가 폭력적이다. ‘국가’(État)를 ‘강타’(coup)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쿠데타라는 프랑스어가 정치 술어로서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이지만, 음모를 꾸며 무력으로 기존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하는 사례는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현대사 70여년 동안 두번의 쿠데타로 군부 세력이 집권한 기간이 30년 가까이 된다.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헌법이 보장하지만,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과언이 아니다.
 
쿠데타의 역사와 현상에 대해서는 백과사전과 정치학사전에서 상세히 찾아볼 수 있을 터, 좀 특별한 관점에서 이를 살펴보자.
마키아벨리는 흔히 권모술수, 곧 권력 쟁취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모략과 술책을 가르쳤다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에서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 군주를 묘사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라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는 것을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하다.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획득하는 방법”을 몇가지 경우로 나누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사악하고 범죄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 사례로 고대 시라쿠사의 참주였던 아가토클레스와 자신과 동시대 인물이었던 올리베로토를 든다. 아가토클레스는 군대의 사령관이 된 다음, 음모를 꾸며 원로원 의원들과 도시의 유력 인사들을 학살한 다음 집권했다. 올리베로토 역시 군인으로서 출세한 다음, 자신의 숙부가 다스리던 도시국가 페르모의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집권했다.
 
현대의 술어를 소급해서 적용하면 이들은 모두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던 경우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마키아벨리스트답지 않게’ 쿠데타라는 집권 방식을 범죄라고 규정했다. 곧 그 수단과 방법을 비판한 것이다. 이는 그가 <군주론>에서 유일하게 부도덕하고 범죄적이라고 한 권력 쟁취의 방법이다.
그는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고 신의도 없고 무자비하고 신앙심도 없는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동료 시민을 학살한 것이다.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뒤에 오는 말들은 도덕적 비판이다.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한 것이다.
 
올리베로토는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정치적 음모로 살해되었지만, 아가토클레스는 장기 집권하며 전쟁이 많았던 시대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상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의 권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게 이탈리아어로 글로리아(gloria), 곧 영광은 파트리아(patria), 곧 조국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조국은 삶의 중심이며, 조국이라는 공적 영역을 위해 덕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영광이기 때문이다.
 
영광은 조국이 존재하는 한 영속한다. 역사적 평가의 명예로운 기준이기 때문이다. 쿠데타라는 집권 수단은 아가토클레스를 나쁜 통치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그는 불후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치욕을 안게 된 것이다. 그는 집권 이후의 통치 기간 동안 업적을 남겼더라도 범죄적 군주라는 악명으로 역사에 남은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범죄적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경우를 설명하면서, 한두가지 사례면 족하다고 말한다. 쿠데타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안티 마키아벨리스트’적인 관점은 오늘날에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나라에 타격을 가하는 쿠데타는 그 발생과 진행 과정에서의 폐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쿠데타 세력의 집권 기간 동안에는 민중에 대한 탄압 통치만 행해지는 게 아니다. 수많은 정치적 왜곡과 사기가 그 못지않게 활용된다.
정치적 정통성 없는 정부는 자신을 억지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정책들을 남발하게 된다.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정책들은 천박하기까지 한데, 쿠데타의 끔찍한 기억을 ‘다 잊고 놀아라!’는 식으로 향락업, 관광업 등을 지나치게 활성화해서 경제적 풍요를 가장하거나, 문화의 이름으로 예술 공연과 체육 행사를 악용하기도 한다. 민중을 부패시켜서라도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심사다.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는 패턴처럼 ‘카리스마 리더십’을 내세운다. 카리스마는 그 어원대로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의 능력이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란 말이다. 절대 권력자인 자신을 따르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해주고, 뭐든 다 해결하며, 뭐든지 다 이룰 것 같은 기적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리더십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그 자체로 사기다.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자기를 따른다고 뭐든 다 해줄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셸던 월린도 말했듯이 정치적 의미에서 악덕은 종종 환상의 함수이다. 이런 정치적 왜곡과 사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 전체를 부패시키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가져오고, 그 부작용이 언제 어디서 더 큰 위기를 불러올지 모른다.
 
부패의 고름은 곳곳에 잠재한다. 역사가 가르쳐주었듯이 쿠데타 정권은 일정 기간 또는 장기간 독재를 할 수밖에 없는데,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금언은 다 알고 있다.
 
이에 최근 개봉한 영화 <듄>의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의 말을 더해야겠다. 그는 집중된 권력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부패할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 쿠데타에 의한 독재 정권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패할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그 권력의 원심력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왔을까. 그 영향은 세대로 이어지는 문제다.
 
쿠데타의 역사에 대해서는 비정할 정도로 냉철하고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김용석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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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5075.html#csidx2e42f117b49ce5882f1942e81fb06c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