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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안보전략을 만드는가

道雨 2023. 6. 26. 09:42

성숙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안보전략을 만드는가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가 지난 1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연정 구성원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맨 왼쪽부터),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 낸시 페저 내무장관과 함께 참석해 이날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문서를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지난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아세안 국가에서 두명,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각 한명씩, 그리고 필자까지 다섯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독일 정계 지도자, 외교안보 분야 고위관리, 싱크탱크 연구자, 언론인 등 다양한 인사들과 집중적인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주제는 독일의 대중국 전략이었다.

 

우리가 아는 독일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며 주도면밀한 나라다. 그러나 토론 내용은 혼란스러웠다. 독일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도 중국에 대한 인식은 다양했고, 접근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는 6월15일 독일 정부가 최초로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중국을 파트너, 경쟁자, 체제 라이벌이라는 세가지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중국에 우호적인 세력은 중국을 파트너, 적대적 세력은 체제 라이벌, 중간 세력은 경쟁자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번 보고서에 대중국 전략의 구체적 내용을 담지 못한 채 차후에 별도 보고서를 채택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도 중국 문제의 정치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선 경제정책을 보자.

 

독일은 중국을 자본주의 분업 질서에서 축출하자는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전략에는 일정 부분 선을 긋는 듯하다.

그러나 집권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 당수이자 외교장관인 아날레나 베어보크는 인권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을 강력히 선호한다. 위험도가 높은 경제 분야부터 탈중국하자는 주장으로, 기본적으로는 디커플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반면 올라프 숄츠 총리를 비롯한 사민당의 신중파는 다변화(diversification)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대중 무역·투자를 지속해 나가되, 점차 다변화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자는 이야기다.

다른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과 독일 재계 대표들은 정경 분리 원칙에 기초해 중국에 대한 투자와 무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수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35%에 지나지 않는데다 이 중 65%가 유럽 시장에 집중돼 있고, 중국 비중은 10% 미만이므로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독일 역시 중국 문제와 관련해 가치와 국익 외교 사이 갈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중국 견제를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연 확장을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외무성, 국방성 관료들과 북대서양동맹파 의원들은 미국과 보조를 맞춰 인도·태평양 전략에 군사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남중국해와 해로 안전, 대만해협 위기에 방관자적 자세만 취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민당 핵심을 구성하는 실용주의자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계승론자, 평화주의자들은 다분히 회의적이다. 독일은 그런 능력과 의지에 한계가 있으므로 인·태 지역에까지 힘을 투사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이는 영토와 주권,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유린이며, 유럽 안보와 평화에 중차대한 위협으로 당당히 맞서야 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의 역할에 관해서는 반응이 달랐다. 기민당과 녹색당 인사들은 중국의 우크라이나 평화안 12개 항에 영토 문제 언급이 없다는 이유에서 회의적이었지만, 일부 사민당 인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의 중재안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부담이 크므로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 경우 중국이 러시아 진영에 가담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우크라이나 사태, 기후 변화, 그리고 미-중 대결 구도가 촉발한 ‘시대전환’(Zeitenwende)의 과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관해서도 의견은 갈렸다. 북대서양동맹과 인권을 강조하는 강경파가 있는가 하면, 평화와 데탕트,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와 다자주의를 선호하는 온건파도 있고, 유럽주의를 옹호하는 유럽연방파 등도 각자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백가쟁명 구도 아래서도 독일 지도자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의 신중하면서도 실용적인 지도력은 한층 돋보인다. 중국에 할 말을 하면서도 낮은 자세로 다양한 정파의 의견을 수용·절충하면서 외교안보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지혜와 경륜이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의 본모습이 아닌가.

같은 고민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자못 심대하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