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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경, 이것은 정정보도인가 우롱보도인가?

道雨 2024. 2. 22. 12:05

조선·한경, 이것은 정정보도인가 우롱보도인가?

 

 

 

'쿠팡노조 술판' 오보 2년 뒤에야 '시늉' 정정보도문

오보 낸 사유·경위, 어떻게 바로잡을지 언급 없고

사과도 없고 오보 쓴 기자·데스크 책임도 안물어

"사실 아니어서 바로잡겠다" 무성의한 한줄 보도

노조 "오보로 누명쓰고 입은 피해 누가 알아주나"

해외 언론, 오보 땐 사과하고 기자·국장·사장 책임

 

 

우리 언론이 독자 신뢰도에서 세계 꼴찌 수준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매년 조사 결과에서, 한국 언론 신뢰도는 벌써 수년째 바닥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해외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반도체업체 AMD의 최고경영자 리사 수가 해외 행사장에서 기자 질문을 받고 “한국 언론을 믿느냐”고 말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한국 언론이 불신받는 가장 큰 이유는 주로 오보·왜곡·과장보도 같은 엉터리 보도와 편향보도 때문이다.

그러나 불신의 더 깊은 뿌리에는 언론이 이런 엉터리 보도·나쁜 보도를 내고도 제대로 사과도, 정정도 하지 않은 탓이 있다. 사람도 꼭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지 않아 더 큰 미움과 불신을 사게 되는 법 아닌가?

 

우리 언론은 잘못된 보도임이 명백하거나 법원에서 오보 판결이 내려져도 이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오보와 왜곡보도로 인해 누군가 막대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어도 기자와 언론은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오보를 낼 때는 크게 보도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만, 정정보도나 사과보도는 작게 보도해 잘 알려지지 않는다. 돌이킬 수도 없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히고도 기자나 언론사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주류언론에 속하는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가 또 그런 일을 했다. 2022년 6월30일 두 매체는 ‘쿠팡 노조 술판’ 기사를 보도했다가, 1년 반만인 올해 1월 법원으로부터 ‘오보’ 판정과 함께 ‘정정보도문 게시’ 명령을 받았다. 한달여만에 결국 정정보도문을 냈는데, 그것이 제대로 된 정정보도인지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쿠팡 노조 술판’ 오보를 ‘단독’으로 낸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월16일 “‘[단독] 쿠팡 노조, 본사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 벌였다’ 관련 정정보도문”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인터넷에 게시했다.

 

“본사는 2022년 6월 30일 인터넷 웹사이트(www.hankyung.com) 경제면에 ‘[단독] 쿠팡 노조, 본사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 벌였다’라는 제목으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국물류센터지부 조합원들이 2022년 6월 23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사이에 쿠팡 본사 건물 로비에서 술을 마셨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이게 끝이다.

 

정정보도문에는 이 기사가 왜 오보인지, 오보를 낸 경위는 무엇인지, 기사의 어떤 부분이 오보이며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겠다는 것인지 등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저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바로 잡습니다’가 전부다.

오보에 대한 사과도 없다. 사과가 없으니 기자나 데스크, 편집국장에게 어떤 책임을 물었는지도 언급이 없다.

또한 이 정정보도문은 오보로 판명난 2022년 6월30일자 인터넷판 기사의 뒤에 붙어있어서, ‘노조가 술판을 벌였다’는 첫 오보는 삭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포털과 홈페이지에 노출되어 있다. 

 

*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가 2월16일 인터넷판에 게재한 '정정보도문' 화면 갈무리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오보를 그대로 받아써 망신을 당한 조선일보의 정정보도문도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는 당시 기사 중 ‘술판을 벌였다’는 부분이 포함된 4개의 문장을 적시한 뒤 (한경과 마찬가지로)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라고만 썼다.

 

 

‘정정보도’는 오보임이 확인된 기사 내용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오보로 인한 피해를 회복시켜 줄 만큼의 내용과 분량으로 보도를 해야한다. 그러나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의 정정보도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굿모닝충청·미디어오늘 등에 따르면, 두 매체의 정정보도문에 대해 오보 피해자인 노조측은 ‘분통을 떠트렸다’고 한다. 노조측은 “아무리 내키지 않는 정정보도라지만 이게 뭔가, 이들의 모함 때문에 우리는 누명을 쓰고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제와 이런 식으로 보도하면 무슨 내용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누가 알아보겠냐”고 했다고 한다.

 

쿠팡 노조는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오보와 이어진 조선일보 등의 ‘받아쓰기’ 오보로 인해, 1년 넘도록 ‘회사를 점거하고 술판이나 벌인’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렸을 것이다.

이 오보가 나온 때는 2년 전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한경 등 수구 매체들이 노조를 ‘부도덕’ ‘무질서’ ‘반사회적’ ‘패륜’ 집단으로 몰아 악마화하던 때였다.

이제 와서 ‘사실이 아니어서 바로잡는다’는 정정보도문 한 줄로 노조의 이미지가 회복될 수 있을까?

노조원들이 당한 정신적 충격과 피해가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과 조선일보의 한줄 짜리 ‘정정보도문’은 오보 피해자를 우롱하는 ‘우롱보도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법원은 두 매체에 ‘정정보도문’ 게시와 함께 100만~500만원 정도의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조선일보나 한국경제신문 같은 거대 언론사가 이 정도 위자료 지급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정도 위자료로 노조의 피해가 회복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보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는 무성의한 한줄 짜리 정정보도문과 ‘소액’ 수준의 위자료 지급이라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우리나라 언론의 오보 생산을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해외에서 언론의 명백한 오보에 대해 내려지는 가혹한 법적·사회적 징벌과 언론 스스로의 반성과 자정 노력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미국에서 중대하고 악의적인 오보에 대해 징벌적 수준의 벌금은 피해자의 정신적·물질적 피해보상과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오보로 언론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3년여 전 악의적 오보에 대해 고작 3~5배의 ‘징벌적(?)’ 배상이 논의됐다가 언론사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 오보로 인한 배상액은 평균 5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오보 피해자는 회복 불능일 수 밖에 없지만, 언론은 큰 부담없이 또 ‘단독’ 오보를 터뜨릴 수 있다. 그깟 몇 백만원의 위자료보다는 언론사의 이념을 강화하고 포털에서 클릭수도 높이는 것이 언론사에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보를 최소화하고 오보가 생기면 수정할 것을 천명한다. 정확은 우리의 목표이고, 솔직은 우리의 방어다.” 

 

워싱턴포스트의 이런 보도준칙을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보’ ‘혐오보도’ ‘편향보도’에서 선두를 달리는 조선일보는 방상훈 사장도 매년 신년사에서 ‘불편부당과 사실확인이라는 저널리즘 원칙’ 그리고 ‘가짜뉴스와 싸움’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오보와 극우편향 보도 '1등신문'인 조선일보 사장의 이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끝까지 신중을 기하는 것, 오보로 확인되었을 때 누군가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은 해외 언론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보도가 조작임이 밝혀지자, 해당 기자 해고는 물론이고 편집국장도 사퇴했다. 퓰리처상까지 받았다가 조작 기사였음이 밝혀진 ‘지미의 세계’ 보도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아사히 신문이 보도사진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기자, 사진부장, 편집국장이 문책을 받고 사장까지 사퇴했던 사례도 유명하다.

 

 

한국 언론은 어떤가?

명백한 오보임이 밝혀져도 기자, 데스크, 편집국장, 사장 중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한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노조를 악마화하기 위해, 노조가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필했다는 악의적인 조작보도를 냈지만, 조작보도를 쓴 기자는 여전히 그 업체에서 지금도 기사를 쓰고 있다. 우리 언론은 1면 톱으로 오보를 내고, 정정보도나 사과보도문은 다른 면에 1단짜리 기사로 감춘다. 오보 피해자에 대한 사과에도 인색하다. 반성의 기미도 없다. 

 

이러니 오보가 또, 또, 또 생산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가 도저히 세계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