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윤석열 사단’이 검찰을 망치고 있다

道雨 2024. 4. 1. 10:38

‘윤석열 사단’이 검찰을 망치고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를 벗어난 휴대전화 정보까지 통째로 수집하는 수사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언론에 대응하는 태도는 용산을 똑 닮았다. 상식과 사회적 합의는 물론 ‘법치’까지 무시하면서 무조건 자기들이 옳다고 강변한다.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하는 헌법과 개인정보의 오남용을 금지한 개인정보보호법 등 상위법과 대법 판례가 버젓이 있는데도, 검찰 내부의 업무 규칙에 불과한 예규를 들어 합법이라고 우긴다.

 

마치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의 피의자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한 뒤, 비판 여론 따윈 개의치 않는다는 듯 호기롭게 출국시킨 윤석열 대통령을 보는 것 같다.

이종섭 대사가 해병대 수사단에 외압을 행사했든 말든 자기 맘에 들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결과는 어땠나.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 체면 모두 잃고, 외교적 망신까지 톡톡히 당했다.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도 비슷한 길을 간다.

대검찰청은 ‘윤석열 검증 보도’를 한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영장 범위 밖의 정보까지 수집한 사실이 들통나자, 이를 해명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대검의 전자정보 이미지(복제) 보관은 법률과 판례에 따른 적법한 형사 절차다.” “사건 당사자의 일방적이고 잘못된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마치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용산의 화법을 연상시킨다.

 

대검은 자신들의 떳떳함을 증명한답시고 판례까지 제시했다.

2022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항소심 판결에서 법원이 휴대전화 정보의 전체 보관을 ‘부득이한 사유’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의 취지는 오히려 그 반대다.

재판부는 ‘범죄혐의와 무관한 전자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해야 하는 의무를 어긴 검찰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검찰이 제출한, 대검 서버에 저장해뒀던 휴대전화 정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주장한 ‘부득이한 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절차 조항을 마련한 취지에 반한다”고 명시했다.

검사라면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보도자료에는 판결문에 있는 일부 문장, 즉 ‘~하더라도’의 앞 부분을 강조해, 마치 법원이 부득이한 사유를 인정한 것처럼 꼼수를 썼다. 전체 문장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로 끝난다.

 

검찰이 주장하는 부득이한 사유는 ‘압수물 원본과의 동일성, 무결성을 입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압수물 전체를 보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디지털 증거 관리를 총괄하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연구소의 이인수 소장은 2016년 한국정보보호학회(KIISC) 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해시값으로 동일성과 무결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압수 당시 각 파일에 부여되는 해시값(디지털 지문)을 비교하면, 압수물 전체를 저장하지 않아도 증거의 동일성과 무결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도 “(대검 서버) 관리에 미비한 점이 있다” “제3의 기관에서 포렌식과 자료 보관을 전담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한겨레 3월28일치 기사 참조).

조직 내부에서조차 다른 목소리가 있는데, 검찰 수뇌부는 요지부동이다.

 

검찰의 ‘디지털 캐비닛’에 통째 저장된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검사들이 더 잘 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언 유착 의혹’ 수사 당시, ‘민감한’ 정보를 털리지 않으려고, 무려 24자리 비밀번호를 가동해 휴대전화를 꽁꽁 잠가버렸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윤석열 대통령 처가가 연루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김건희 여사 오빠의 휴대전화는 빼버렸다. 혹시라도 정권이 바뀐 뒤 후임 검사들이 악용(!)할지 몰라 그랬나.

 

 

대법 판례에 어긋난 검찰 수사는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도, 대검 서버에 저장했던 ‘장충기 문자’를 재활용한 탓이다.

‘반도체 주권을 지키는 삼성의 발목을 잡는다’는 재계의 비판에도 ‘사법 정의’를 위해 매진한 수사가, ‘위법 증거 수집’이라는 절차상 문제로 수포가 될 판이다.

 

검찰이 대법 판례에 맞게 합당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이런 판결은 계속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법을 무시한 검찰 수사는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똑 닮은 ‘윤석열 사단’이 검찰을 망치고 있다.

 

 

 

이춘재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