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원세훈, 구속된 장세동을 기억하라

道雨 2013. 3. 2. 16:05

 

 

 

 

    원세훈, 구속된 장세동을 기억하라

 

 

지난해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의 오피스텔 앞에서 민주통합당 관계자와 취재진 등에 둘러싸인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가운데) 등이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③‘국정원녀’ 사건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하고, 수사에 순응하지도 않고, 대북심리전이라 억지 부리며, 고소를 남발하는 국정원
소극적 수사로 일관한 경찰은 증거인멸 방치에 거짓 중간발표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대통령으로 당선했지만, 2년 뒤 탄핵의 운명을 맞는다
1987년 용팔이 사건을 사주한 장세동은 6년 뒤 구속되고 만다
정의는 늦더라도 반드시 온다

 

2012년 12월11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소재한 오피스텔 607호 작은 문 앞에서 시작된 대치상황이 대선정국 최대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할 때’, ‘후보자 및 그 선거사무원이 제기한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다고 판단할 때’ 혹은 ‘현행범에 대한 신고가 있을 때’ 영장 없이 현장에 진입해 증거가 될 수 있는 물품을 수거하고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누구도 이러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활동에 불응하거나 방해해선 안 된다.

 

그날, 오빠와 부모는 왜 불렀을까

 

문제는 당시 상황이 선관위와 경찰의 ‘강제진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충분한 소명, 혹은 급박한 위험’이 존재했느냐의 논란이다. 그 답은 결국 ‘적극성’, 다른 유사 사례와의 비교를 통한 ‘형평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시기에 접수된 또하나의 신고, 여의도 한복판에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을 차리고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는 신고 사건에서는 선관위가 전격적인 현장 진입 및 촬영, 컴퓨터 등 증거물품 압수를 실시해 ‘새누리당 에스엔에스(SNS)단장 윤정훈’이 주도한 범죄조직의 실체를 밝혀내고 검찰에 고발했다. 또하나의 문제는 국정원의 비밀 특수임무가 노출되고 그로 인해 국익 침해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국정원이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는 이 제3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나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평소 공조협력관계에 있는 경찰 보안 라인과 협조하거나, 정말 긴급한 보안업무라면 특공대라도 투입해 비밀 유출을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국정원은 직원 김씨의 오빠와 부모를 불러 언론과 대중 앞에 그 신원을 노출시켰다. ‘국정원 직원’이 아닌, 부모와 오빠의 보호가 필요한 ‘가녀린 20대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결국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긴 (혹은 충분한 증거인멸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김씨가 대치 40시간 만인 12월13일 오후 2시에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 1대씩을 경찰에 ‘임의제출’하면서 희대의 대치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마트폰과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 다른 핵심 증거물품은 제출되지 않았다. 김씨는 컴퓨터를 경찰에 제출한 뒤 국정원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라졌다.

경찰은 김씨가 컴퓨터를 제출하자마자 “복잡하고 기술적인 사안의 특성상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 1주일 이상 걸릴 것”이라고 발표한다. 결국 “12월19일 대통령 선거 전에는 어떤 결과도 나올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 제3차 텔레비전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12월16일 밤 11시, 경찰은 각 언론 및 방송사 기자들을 불러모아 ‘긴급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정원 직원 김씨의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댓글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발표를 했다. 대선 초미의 관심사이다 보니 각 방송사는 즉시 속보로 이 사실을 전했고, 갑자기 모든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 “국정원 여직원 하드디스크에서 댓글 흔적 안 나와”라는 내용이 대형 자막으로 떴다. 다음날 조간신문 상당수가 1면에 이 사실을 보도했다. 대선 막판 최고의 관심사였던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맞짱 토론이 ‘국정원녀 사건 속보’로 묻힌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쪽의 ‘국정원 여직원 인권침해’, ‘허위 의혹 제기, 비열한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던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옳았다고 경찰과 언론, 방송이 온 국민에게 확인해준 격이 되었다.

다음날 오전, 많은 기자들이 경찰에 의혹을 제기했다. 댓글은 하드디스크가 아닌 포털이나 해당 웹사이트 서버에 남는 것이 아닌가, 하드디스크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면 ‘디가우싱’ 등 증거인멸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등의 질문에 경찰은 ‘40여개의 아이디를 사용한 인터넷 접속기록, 대선 관련 글 열람 흔적, 데이터 삭제 및 덮어쓰기 등 증거인멸 흔적 등을 발견했다’는 추가 발표를 한다. 하지만 이미 속보로 나간 “댓글 흔적 없다”는 간결하고 명확한 발표의 효과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질문에 경찰은 “김씨가 사용한 아이디나 아이피(IP)가 주로 접속해 활동한 웹사이트에 대한 조사는 고려하지 않고 있고, 김씨가 어머니 명의 스마트폰을 사용한 사실이 있지만 개인 용도였고, 압수수색영장 신청 등 강제수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의문의 여지만 남긴 ‘이상한 중간수사결과 발표’였다. 논란이 이어지고, 기자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중간수사결과 발표 지시는 내가 내린 것”이라며 그에 따른 공과 과는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확답을 주었다. 최초 대치 과정에서의 증거인멸 조장 혹은 방치, 컴퓨터 임의제출과 동시에 ‘분석에 일주일 이상 소요’ 발표, 사흘 만에 그 말을 뒤집고 ‘댓글 흔적 없어’라는 거짓 중간발표 등 시간이 지날수록 명백한 정치적 편향성이 확인되는 자가 사건 수사 지휘의 정점, 서울경찰청장으로 계속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12일 청와대에서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원세훈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꼽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외국에서도 유사사례 찾기 힘든 ‘국기문란 사건’

 

결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경찰은 전혀 상반된 수사결과들을 연이어 내놓게 된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오늘의 유머’라는 진보성향 사이트에서 박근혜, 문재인 양 후보 관련 글에 여러개의 아이디를 사용해 ‘찬성’ 혹은 ‘반대’ 버튼을 눌러 베스트 글로 올리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리는 행동, 전혀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요리나 연예 관련 글을 집중 추천해 선거 관련 글이 보이지 않게 하는 행동을 한 것뿐만 아니라, 직접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정책 홍보와 지지, 야당이나 진보성향 유력인사 비판 글을 무수하게 게시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아이디 중 5개는 김씨가 아닌 민간인 이아무개씨가 사용했고, 그가 추가로 30여개의 다른 아이디를 사용해 수백개의 정치와 선거 관련 글을 올리고, 수천건의 글에 추천 혹은 반대 표시를 한 흔적 역시 발견되었다. 또한 그가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전 선거운동원이었던 사실 역시 밝혀졌다.

 

추가로 김씨와 이씨가 접속한 같은 시간대에 다른 아이디들이 사용됐던 흔적이 발견되면서 “도저히 한 사람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직적인 범죄’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내외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복 원세훈씨가 국정원장으로 부임해 새로 만든 ‘대북심리전단’ 직원 70여명 전체가 대통령 치적 홍보와 정부 비판 인사 공격 활동을 하다가 선거개입 여론조작 활동에 동원되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각 직원이 복수의 민간인 정보원을 고용·동원했다면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작 심리전’을 벌인 엄청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이와 유사한 사례를 역사나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기나 한 걸까?

 

사건 초기부터 국정원의 대응은 이상했다. 앞서 언급한 국정원 직원의 가족이 나타나는 풍경이나, 경찰에 출두하는 김씨를 호위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쓴 다수의 직원이 공개 동원된 모습, 경찰 수사 결과 범죄 혐의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경찰에 대해 ‘국정원 업무도 모르면서…’라는 위협적 공개 발언,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댓글이나 다는 일을 ‘국정원의 통상업무, 대북심리전’이라고 성급하게 억지주장하는 패착 그리고 국정원을 비판하는 민간 전문가나 기자들에 대해 고소를 남발하는 저급한 행태들은 도저히 국가기관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중 가장 정점은, <한겨레>와 익명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 내부에서 제기된 의혹을 공개한 전직 국정원 직원 및 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직원 세명에 대해 수사 및 징계, 고발 방침 등을 공식 발표하면서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이들에 대해 ‘인간 쓰레기’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사용하며 비난한 것이다.

그들이 ‘국정원이 무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 고소를 하고,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죄’ 운운하던 태도에 비춰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적반하장격의 반응인지를 알 수 있다.

 

국정원 게이트의 궁극적 책임은 원세훈 국정원장이 져야 한다. 정보에 대해서는 경력이나 학력, 경험이 전무한 지방 행정관료 출신으로 오직 서울시장 이명박에게 충성한 대가로 그가 대통령이 되자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으로 기용됐다는 평가를 받는 자.

결국 그가 했던 일은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 이명박 1인에게 절대충성하는 것이라고 의심받고 있다.

 

미국 해외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과 국내정보기관인 연방수사국(FBI) 수장의 임기를 대통령과 엇갈리게 하고, 국가정보위원회를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만든 사례는 우리 ‘원세훈 국정원’의 코미디 앞에서 ‘사치’에 불과해 보인다는 조소가 수긍이 가는 이유다.

 

 

공조직 동원, 용팔이 사건보다 죄질 더 심각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인 민주당 선거운동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한 민간인 5명이 경찰에 체포되고, 그중 한명이 전직 시아이에이 요원으로 공화당 선거운동본부 경비주임을 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재선을 노리던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 및 공화당 선거운동본부는 관련성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의 집요한 취재 및 보도는 에프비아이의 수사와 의회 조사로 이어졌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기에 이른다. 1974년, 탄핵 결정 직전에 닉슨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한편, 1987년 대한민국에서는 여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야당 신민당에 반발하며 김영삼 의원 주도로 새로운 정당인 통일민주당이 발족하려는 창당 기념식장에 조직폭력배들이 난입하는 괴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건을 주도한 폭력조직 ‘전주파’의 두목 김용남의 별칭인 ‘용팔이’의 이름을 따 ‘용팔이 사건’으로 불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 휘하의 경찰은 아예 수사 자체를 거부했고, 노태우 정권 당시 수사를 진행해 옛 야당인 신민당 국회의원 2명이 ‘용팔이’를 사주한 사건으로 결론 내리게 된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재수사를 지시해 결국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이 신민당 의원에게 현금 5억원을 주고 청부 폭행을 사주한 사실이 밝혀졌다.

2012년 대선 ‘국정원 불법 여론조작 사건’의 경우, 일단 원세훈 국정원장에 의해 기획·실행된 사건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용팔이 사건’과 유사하지만 국정원 공조직이 직접 동원됐다는 측면에서 그 죄책은 훨씬 더 심각하다.

국가와 체제를 수호하며 법을 집행하고 수사를 행하는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그 누구보다 국가의 법 집행에 순응하고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최초 신고 때부터 지금까지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하고, 수사에 순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수사진을 위축시키는 위협적 발언과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구속기소된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수사를 할 때 서울시가 국정원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면 국정원이 허용하고 동조해 줬을까?

굴욕적인 태도를 보인 경찰 역시 질타받아야 한다. 이 사건 피의자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었어도 이런 식으로 소극적으로 수사에 임했을까? 이미 범죄 혐의를 두고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 국정원이 ‘통상업무’라고 시인·자백한 상황에서 실무자인 김씨의 상관과 소속 조직 및 사무실 등에 대한 수사는 왜 하지 않는가? 공범 내지 교사범으로 의심되는 상관들이 계속 김씨를 보호하고 대동하고 영향을 끼치도록 놔두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무리하고 부당한 중간수사결과 발표 지시에서 이미 ‘정치적 편향성’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이익 충돌’이 의심되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에게 이 사건의 지휘책임을 계속 내맡기고 있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현 정권이 제공하지 않는다면, 다음 정권 혹은 그다음 정권에서라도 찾고 밝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워터게이트’와 ‘용팔이 사건’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정의는 때론 늦게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 일찍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 죄책이 줄어들 수 있지만 은폐와 호도로 정의를 방해하면 그만큼 죄는 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