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검찰, 인적 청산 없는 개혁은 없다

道雨 2013. 3. 8. 12:16

 

 

 

        검찰, 인적 청산 없는 개혁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공개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직권조사 결과 발표문에는 그냥 넘기기 힘든 내용이 적잖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2010년 3월) 사립학교인 ○○고교 교장 비자금 조성 내사 사건에 대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협의하에 내사를 진행하였다. 이 외에 민정수석실(민정2비서관)이 지원관실 업무범위를 벗어나 국가정보원을 통해 첩보를 입수해 처리하도록 한 사건으로…좌파 환경단체 보조금 중단 공문 유출 관련 내사 사건 등이 있고, 사건 처리 결과 105건을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주요 관련자들이 재판에 회부됐으므로, 수사의뢰는 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권고만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오래간만에 조사는 제대로 해놓고, 마무리 단계에서 꼬리를 내렸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직접 실행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부하들은 직권남용과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6월~10월의 실형을 받고 재판중이다.

그런데 불법사찰을 실행한 것만 죄가 되고, 애초에 이를 지시하고 보고받은 ‘몸통’과 참모들은 죄가 안 된다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법논리인가.

 

더구나 민정수석실은 불법사찰뿐 아니라, 이후 검찰 수사가 축소·왜곡되는 과정에도 적극 관여한 의혹이 짙다.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주는 것이라고 해서 5000만원 관봉 다발을 받았다고 증언했고, 검찰 수사가 왜곡되는 과정에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증언도 여러 차례 나왔다.

 

지난 1월 <한겨레>는 검찰 특별수사팀의 재수사 때도 민정수석 출신인 권재진 법무장관의 ‘뜻’이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장관이, 그것도 연루 의혹의 당사자가 구체적 사건에 개입해 수사를 왜곡했다면, 죄질면에서 불법사찰을 실행한 하수인들보다 더 중죄가 아닐 수 없다.

총선 전에 사건 핵심인물인 진경락 과장 수사를 못하게 해, 결국 증거인멸 전 신병확보를 막은 게 사실이라면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시효(5년)도 남아 있다.

 

검찰 역사에서 최고위급 간부가 처벌된 사례가 더러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차정일 특별검사팀이 수사한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단순히 수사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옷로비 사건에서도 김태정 전 법무장관과 박주선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비슷한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다.

 

당장에라도 특별검사가 검찰 수사 왜곡 경위를 파헤친다면 이용호 게이트 이상의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정문과 와이티엔 노조가 1년여 사건을 추적 취재해 작성한 70쪽의 고소장을 읽어보면, 1·2차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지연으로 정국이 경색되면서, 검찰개혁은 국민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

대통령이 신념과 철학을 앞세우며 주먹을 불끈 쥐면,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들이다. 자칫 모처럼 잡힌 검찰개혁 분위기가 도루묵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마침 와이티엔 노조의 고소장이 검찰에 접수됐다. 그런데 검찰은 시큰둥한 모양이다.

검찰이 사건의 ‘몸통’은 물론, 자기 살을 스스로 도려낼 정도의 쇄신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특검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 번 수사로도 박수 받지 못한다면 검찰의 존재 의미는 없다.

인적 청산은 검찰개혁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김이택 논설위원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