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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정권'은 선거로 심판, '입틀막 언론'은 어쩌나

道雨 2024. 2. 20. 09:49

'입틀막 정권'은 선거로 심판, '입틀막 언론'은 어쩌나

 

 

 

'과잉경호' 문제 아닌 헌법 '표현의 자유' 훼손 문제

야당 의원 '입틀막' 한달만에 또 졸업생 '입틀막'

정부, 검·경·방통위·방심위 동원 비판언론 '입틀막'

주류언론들, 비판커녕 물타기…제 입 틀어막아

정권의 헌법가치 훼손 눈감는 언론도 심판해야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연설 중 “R&D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친 졸업생이,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갔다.

현장 영상을 보면 이 졸업생이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뒷자리에서 피켓을 들고 일어나 외치자마자, 순식간에 경호원 여러명이 달려들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끌고 나갔다. 대통령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경호원들이 마치 무슨 대통령 습격범이나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듯 한 것이다.

 

겨우 한달 전에도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 뒤통수를 향해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다 똑같은 수모를 당했다. 그 때 시민들이 “헌법기관인 현직 국회의원도 짐승처럼 끌려나가는데 일반인이었다면 어땠을까”라고 걱정했다. 그게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대통령실은 강성희 의원과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사태에 대해 ‘대통령 경호 차원’이니 ‘현장 소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는데, 억지 해명이다.

대통령 행사에 초대받은 현직 국회의원이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국정기조를 바꾸라’고 말하는 것, 졸업생이 자기 졸업식장에 참석해 멀리 떨어진 대통령을 향해 ‘R&D예산 복원하라’고 소리친 것이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인가?

대통령의 뒤통수와 귀는 국회의원과 시민이 요구하는 이런 정도의 주장에도 위험에 빠진다는 말인가? 

 

2월16일 MBC 뉴스화면 갈무리

 

 

일각에서는 ‘과잉 경호’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과잉 경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대통령 권력에 의해 틀어막히고 끌려나가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문제다. 국민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 그 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도  입만 열면 '자유'를 말하는 대통령 앞에서. 

 

우리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유럽인권조약 제10조, UN국제인권규범 제19조에도 ‘모든 사람이 공권력과 법률의 제한을 받지 않고 누릴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가 명시되어있다. 그래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행사장에서 반대와 비판 주장을 하는 시민의 입을 틀어막거나 끌어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독재자’라고 말한 KBS 기자의 입을, ‘당신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조롱하는 한 지역방송 기자의 입을 아무도 틀어막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그의 귀를 고통스럽게 하는 말을 꺼내는 입은,(국회의원의 입이든, 국민의 입이든) 경호원들의 우악스런 손에 틀어막히고, 끌려나가 제압되고, 행사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위해’나 ‘소란’을 이유로 국민의 입이 언제라도 ‘입틀막’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국민 입틀막’이 새삼 놀라운 것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1년 반만에 셀 수 없이 반대와 비판의 입을 틀어막아왔다.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욕설 동영상을 ‘입틀막’했다. 

이를 보도한 MBC기자를 대통령 순방 전용기에서 쫓아내 ‘입틀막’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름을 감추다가 명단을 공개한 언론은 압수수색으로 ‘입틀막’하려 했다.

윤석열 검사의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 수사무마 녹취록을 보도한 방송들도 압수수색·고소고발하고 무더기 징계하는 식으로 ‘입틀막’했다.

천공의 대통령 관저 개입 의혹 제기 언론을 ‘입틀막’하려고 고소고발하고 출입기자단에서 쫓아냈다.

비판 언론에 대한 ‘입틀막’에는 대통령 경호실이 아니라 방통위, 방심위, 검찰, 경찰 같은 국가기관들이 동원됐다.

 

 

더 큰 문제는 언론 스스로에게 있다.  

이 정권이 우리나라 헌법 제21조에서 보장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언론과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도, 오히려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넘어가고 있다.

강성희 의원이 지난달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팔다리가 들려져 끌려나갔을 때,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언론들의 보도가 그랬다. ‘경호상 위해 행위로 판단’했다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만을 그대로 기사화하거나 여야의 입장을 나란히 다루며 이 사태를 ‘정치공방’이니 ‘논란거리’로 몰고 갔다.

이 정도는 애교다. 

“국회의원의 심각한 무례와 위험한 일탈”(한국일보), “국회의원의 의도적 행패를 야당이 두둔하고 있다”(문화일보), “소란 피운 뒤 끌려나가는 진보당 의원”(국민일보), “축제날 국회의원 돌출행위 논란”(서울신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사설)도 있다.

 

국회의원이 물리적 폭력이 아닌 ‘말’로 국정을 비판한 것을,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위해’, ‘소란’ ‘행패’ ‘일탈’ ‘돌출행위’로 폄하하고 비난한 것이다.

 

2월 16일 KBS 뉴스 빅카인즈 화면 갈무리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사태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류 언론들은 야당의 비판 논평에 대통령실의 ‘경호상 불가피한 조치’ 해명을 보도하는 데에 그쳤다. 조선·중앙·문화 등 ‘친윤’ 애완견 신문들은, 구호를 외친 졸업생이 “알고보니 녹색정의당 대변인이었다”며, 일제히 물타기에 나섰다.

한 달 만에 또 벌어진 정권의 ‘입틀막’을 공영방송 KBS는 단신으로 보도했고, 주류 언론들은(극소수 비판언론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도 사설이나 논평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2007년 주류 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이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다”며, 난리를 쳤던 때가 있다. 이른바 '기자실 대못질' 사건이다. 폐쇄적·배타적으로 운영되면서 특혜를 누려온 정부부처 출입기자단을 해체하고, 부처 사무실 무단출입을 금지하겠다고 하자,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극렬 반발했다.

편집국장들 명의로 ‘전두환 군사정권보다 더한 언론탄압’이라는 집단 성명도 발표했는데, 전국의 신문사 편집국장들(한겨레 등 일부는 제외)이 모여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낸 게 정부 수립 이래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는 정부가 언론의 입을 우악스러운 경호원의 손으로 틀어막지도, 검찰·경찰·방통위·방심위 같은 국가기관을 동원해 틀어막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언론이 ‘언론탄압’이라며 반발하며 사납게 짖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정권이 국가기관을 동원해 자기 입을 틀어막아도 언론은 조용할 뿐이다. 국민과 야당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언론은 짖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도록 보장해준 주인에게는 사납게 짖고, 입을 틀어막고 때리는 주인에겐 벌벌 떨며 ‘짖지 않는 개’(sleeping dog)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입틀막’ 정부는, 민주주의 방식대로 선거를 통해 심판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정부에 짖지 않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버린 '입틀막' 언론은 선거로 심판할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을까?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